하나님의 의를 지키는 <천연 기념물>
영어 이름 가운데 선호하는 것이 남자는 다윗과 다니엘 여자는 에스더인 듯 싶다. 혹시 그 마음 가운데 남자는 왕이나 고위직, 여자는 왕비이기 때문인 것 같아 보일 수 있는데, 만약 이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공의를 위해 목숨을 담보 제공하라" 라는 서류에 싸인을 한 뒤에 이름을 정하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일까 생각해 보았다. 왜냐하면 다윗 다니엘 에스더가 받은 직위의 축복은 기쁨으로 생명을 내어 맡긴 그 대가로 받은 은혜이었기 때문이다.
다니엘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았고 아마 IQ와 EQ 모두가 우수한 최고의 지혜를 받은 인물로 보인다. 그리고 포로로 갔으나 엄청난 경쟁을 뚫고 선택된 궁중 대신이 되었으며, 더욱 돋보이는 것은 나라가 바뀜에도 불구하고 여러 왕들로 부터 계속 중용이 된 사람이니,우리나라의 ‘고 건 ’전 국무총리를 훨씬 능가하는 인물이라 생각된다.
** 목숨을 건 행보를 감행하려면 그 가치와 명분이 분명하여야 해 볼만 하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숨의 담보는 커녕 묵살하거나 모른 척 피하려고 할 터인데, 다니엘은 현실의 신분 상승이나 안주함을 우선하지 않았다. 왕의 심복의 자리를 차지하기 직전에 그 모든 영광을 버리고 나아가 목숨을 걸어야 할 만한 뜻을 정한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자, 이방 신에게 제사했던 고기를 거부하고 채식 만 하겠다고 결정함으로써 자진하여 위기 속에 뛰어 들어간 셈이다. 그 뿐인가 그는 왕을 신으로 섬기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하다가 사자 굴에 까지 들어 가기를 서슴치 않았다. 하나님은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하나님의 의에 목숨을 내어놓는 이에게 엄청난 축복을 부여하신다는 예화를 선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니엘이나 많은 신앙의 선배들은 왜 이런 박해를 기쁘게 여겼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 답은 바로 이 박해가 그들의 신분과 정체성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이 박해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종이요 지금 하나님과 함께 있어서 영광 중에 기뻐하는 저 하늘의 선지자들, 이사야 예레미야와 같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때야말로 우리는 사탄에게 "그래 고맙다 네가 나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증거하고 있구나" 라고 토로할 수 있는 것은 천국의 실체를 알고 믿기 때문이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롬8:18)
천국 시민은 이 땅의 사람들과는 근본 자체가 다르므로 반드시 핍박을 받게 된다. 요즈음 크리스찬 아이들은 집단 따돌림이나 포르노와 싸워야 하고, 대학생은 입학부터 나쁜 술 문화와 성적 부패와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으며, 또 직장은 뇌물과 회유의 끈이 부단히 그들을 노려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별종의 기인이 되어야만 그리스도의 고난에 겨우 동참할 수 있는 구조 가운데에서 산다. 생의 목표를 죽음 건너편에 대한 관심도 없이 현실의 만족만 취한다면 그는 <의>를 모르는 자이며, 천국 시민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직장을 잃을 수도 있고, 수시로 조롱과 경멸 조소를 받을 것이며, 수군거림 그리고 죽음이 찾아올 수도 있다. 그 때 마다 우리는 천국 시민권 자로서의 인내와 담대함으로 끝까지 성경적 의를 지키는 자는 마침내 <의의 천연 기념물> 이라 일컫게 될 것이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