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나 신선한 진리는 오직 예수 뿐 ”
새벽 일찍 개장되는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 보면 수족관 속의 활어마냥 힘찬 삶의 현장을 볼 수 있다. 그 곳의 상품들은 무엇보다 방금 출시되었다는데 의미가 있다. 특히 살아서 유영하는 생선의 눈과 마주치면서 신선한 활어회를 즐기는 미식가들
이 새벽을 깨우며 줄을 잇는다.
인간사에서 변천해 가는 사상과 철학 사조들은 시작할 때는 거의가 좋은 뜻과 동기가 그 사상을 이끌게 된다. 예전의 잘못됨과 모순을 타파하는 개혁의 새로운 파고를 밀어 부치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지 않아서 그 <새시대의 희망> 은 또 다른 모순과 병패로 인해 퇴물로 전락하는 데, 마치 어 시장에서 시간대로 변질되어가는 생선들과 흡사하다. 나중에는 급속으로 부패하여 구역질 나는 악취를 풍기다가 또 다른 신선해 보이는 트렌드에 목덜미가 잡히게 된다.
인권을 말살하고 부패했던 왕정의 무덤에서 싹이 돋아 난 민주주의는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기간 동안에 등장한 천부인권사상과 평등사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이 후에 공산주의의 등장과 빠른 패망으로, 상대적 가치가 더욱 높아져서 이제는 마치 진리인 양 터를 굳히고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야 말로 흑인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아주 선한 동기로 자라온 획기적인 대안이었으며, 지금도 억압받는 나라에서는 극히 동경할 만한 제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신선한 시작도 시간이 흐르자 어물전에서 냄새를 풍기어 이젠 어묵 공장에나 갈 만한 처지가 된 듯싶다. 다수의 권익을 보호하던 사상이, 어떤 수단이든 다수를 모으기만 하면 정의로 자리 매김 받고 있으며, <그 다수> 는 인본주의를 기초로 했다는 여실한 증거를 남기면서 <새로운 바벨탑> 의 골조를 형성하여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대항마로 둔갑 하고 있다. 보라 민주주의는 인권과 여권을 낳고 소수 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동성애 반대자를 위헌을 자행하는 범법자로 만들며, 하나님의 창조 컨셉의 우선 순위인 남녀의 구별을 한 울타리 안으로 넣어 뒤 섞어서, 혼돈을 질서로 만드신 창조의 세계를 다시금 혼돈(Chaos)으로 회기 시키려 하고 있지 않는가. 이런 카오스의 청지기야말로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항하는 바벨탑의 주력 사상일 수 밖에 없다.
모세가 보낸 12 정탐군의 보고에서 10명이 가나안 침공 불가론을 폈었는데 다수결 원칙으로 했다면 약속의 땅은 신기루의 땅이 되었을 것이며, 이 보다 앞서서 아론이 주도한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배도했을 때는 1대 200만 명의 대치 국면이 되었으나 그 한 명 모세가 옳았다. 하나님은 분명히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출23:2) 라고 하셨으며, 그 예로 성경에는 수 많은 장면에서 하나님만 경외하는 극 소수에 의해 이스라엘은 죄 사유함을 받고 회복되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진리로 삼고 성경을 그 다음 순서로 해석하는 많은 성도들에게 강력한 경종을 울려 주고 싶은 마음이다.
지금 북한이나 이슬람 권에 민주주의라는 물고기를 가져다 준다면 신선한“활어”이겠지만,서방의 나라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명하신 마지노선을 훌쩍 넘어선 것 같다. 보라. 성경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민주주의의 투표와 다수결 방식이 교회 질서의 골수에 들어와 선거로 인해 하나님의 교회가 타락 훼손되고 있지 않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앞서서 당회나 공동 의회의 <표심> 에 우선하는 목회자들이 이를 공개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곧 이어 쉰 내음을 풍기게 되는 세상의 트렌드,이념, 철학을 맹신하면 안 된다. 언제나 신선한 진리는 <오직 예수,오직 성경> 원 액기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