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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무슬림 유학생 유치 정책을 보면서...

2017년 8월2일자 인천일보를 보니 인천 대학교가 이슬람 유학생을 대거 유치하기 위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이를 위해서 총장이 직접 중동을 발로 뛰면서 이슬람국가의 교육관계자들을 만나 학교를 홍보하고 무슬림 유학생들을 유치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두바이, 요르단, 쿠웨이트 등 아랍어를 사용하는 나라 학생들을 목표로 삼았다고 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에는 최근에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이슬람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고 생각하여 미국행 유학을 꺼리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상황을 호기로 이용하여 그들을 모셔오자는 생각인 것이다.

이들을 위해서 무슬림 기도처도 만들어 주고 할랄 식당도 만들어 주어 무슬림들이 불편함 없도록 생활환경을 최적화해 주어 처음에는 적은 수로 시작하더라도 입소문에 의해서 더 많은 무슬림 학생들을 오게 하겠다는 것이 총장의 계획으로 보인다.

지금 대한민국에 인구가 줄어들어 대학교마다 정원 채우기가 쉽지 않다는 점은 자타가 공인하는 현실이다. 학교 운영의 총 책임을 맡은 총장으로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심 끝에 기발한 돌파구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인천대학만의 상황은 아니다. 국민대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 유학생을 위한 특별 공간을 마련해 주어 전국에 80명 정도 되는 사우디 국적의 유학생들 중 4분의 1이 국민대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무슬림 유학생 유치 전략을 선택한 것은 커다란 실수를 범한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학교의 재정에 큰 유익이 되며 가장 탁월한 해결책이라고 보이는 이 행위를 왜 실수로 보아야 하는가? 그 이유를 살펴보자면 아래와 같다.

<첫째 세계적인 흐름을 보지 못하고 상황파악이 전혀 안 되었기 때문이다>

상황파악이 안 되었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세계는 지금 이슬람과의 전쟁 중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좌파와 우파의 전쟁 중이라 할 수도 있지만 국경선만 넘어서면 세계는 이슬람 때문에 몸살을 앓으면서 이슬람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예를 들어보자.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이슬람국가 7개국을 입국금지 시키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왜 종교로 사람을 차별하려고 하는 것이냐? 이것은 인권침해 및 종교편향이며 민족주의적 만행이라고 매스컴이 벌떼같이 일어나 트럼프를 욕하며 공격했으나 트럼프는 자신의 정책을 바꾸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일반적으로 취임초기에는 국민의 지지율을 높이려고 인기정책을 쓰기도 하는데 오히려 욕먹을 짓을 한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과 언론이 반발할 것을 몰라서 그랬을까?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대통령의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는 자신이 욕을 먹더라도 무슬림들의 유입을 막아 국가 안보를 튼튼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정상들도 마찬가지다. 다문화정책에 치중하면서 종교나 인종차별 없이 누구든지 잘 대해주면 그들도 우리에게 잘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무슬림들에게 많은 특혜를 주어가면서 최선의 복지를 제공해왔다. 그런데 무슬림들의 숫자가 많아지자 본색을 드러내며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로 통치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테러를 저지르는 일이 일상사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무슬림들은 우리와 동화될 수 없으며 동화되려고 하지도 않는다면서 이슬람 때문에 다문화 정책은 철저히 실패했다”고 선언했다.

브렉시트 덕분에 권좌에서 물러난 영국의 데이빗 캐머런 총리도 “무슬림들을 보호하고 도와주는 동안 그들은 우리 가운데서 원리주의 이슬람을 키워나갔다”면서 다문화 정책 실패를 선언했다.

프랑스의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무슬림들에게 하나씩 양보하다 보니 우리 것을 다 잃어버렸다”면서 역시 다문화 정책은 이슬람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천명했다.

강대국들은 실패했지만 우리는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고집이다. 우리가 아무리 무슬림들에게 잘 해줘도 대한민국의 복지는 유럽의 복지를 따라갈 수 없으며 외국인들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정서는 유럽의 똘레랑스(관용)문화보다 결코 월등하지 못하다. 그들이 실패했다면 그들의 방식을 따라가고 있는 우리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해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꼽히는 사람이다. 그러던 그녀가 2015년 9월 유럽으로 가던 난민행렬에 끼었다가 배가 난파하면서 해변가에 시신으로 발견된 아일란 쿠르디라는 어린애의 사진을 보고 감동을 받아 시리아 난민을 무조건 다 받아들이겠다고 선언을 했다. 온 세계가 환호를 했고 그녀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시리아 난민들은 모두 무슬림들이다. 무슬림들이 100만 명 넘게 쏟아져 들어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테러와 집단강간 사건들이 끊임없이 발생하면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인기는 곤두박질했다. 우리는 할 수 있다고 외치면서 분위기를 잡아가려 했지만 결국 “난민 수용의 방향은 맞았지만 우리는 준비가 부족했다”는 말로 얼버무리면서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는 상황이다.

<둘째는 이슬람의 정체를 몰랐기 때문에 저지르는 실수이다>

일반적으로 무슬림 숫자가 소수인 지역에서는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로 각인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이것은 숫자가 늘어나서 그 사회의 무시할 수 없는 집단이 되기까지 세력을 키우기 위한 준비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무슬림들의 숫자가 늘어나면 그들의 태도가 달라지고 그들에 의해서 국가의 판도가 바뀐다. 유럽인들은 무슬림들에게 양질의 의식주와 복지를 제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그들은 “우리는 이 땅을 점령하러 왔다”고 외치며 거리 시위를 하고 다닌다. 특별한 폭발물이나 총칼 같은 무기가 없더라도 길바닥을 가득 메운 자동차와 트럭이 테러용 살인 무기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는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핍박을 피해 메디나로 이주했다가 그 땅의 통치자가 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무함마드는 그들의 행동모델이고 무함마드가 이민 가서 그 땅을 점령한 것처럼 무슬림들의 이주의 목적은 그 땅을 점령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들은 무식한 광신자들이기 때문에 그렇지만 학벌이 높은 무슬림들은 테러를 저지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순진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가장 잔인한 이슬람 무장단체 IS(이슬람국가)의 최고 지도자 아부바크르 알바그다디는 무식한 사람이 아니라 이슬람학을 연구하여 철학박사학위(Ph.D)를 받은 사람이다.

9.11 테러를 성공시킨 19명의 무슬림들은 항공기를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었던 고학력 전문가들이었다.

아프가니스탄 파병 명령을 받고 전쟁터로 가서 동료 무슬림들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미군들 편에서 일을 하느니 차라리 이슬람의 원수들을 죽이고 천국을 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여 파병을 위한 신체검사장에 가서 기관총을 난사해 미군 13명을 죽이고 수십 명을 부상케 했던 니달 하산은 미 육군 소령이었으며 심리학 박사였다.

유럽에서 테러집단으로 지정된 무슬림형제단의 영적인 지도자인 유수프 알 가라다위는 옥스퍼드 대학의 학술회원이며 이슬람에 대한 책을 120권이나 쓴 학자이다.

무슬림들은 학벌이 높더라도 그 학벌이 테러를 저지시킬 수는 없다. 이슬람의 가치관에 의하면 세상 학문과 법과 제도는 인간이 만든 무지한 것이기 때문에 알라께서 만드신 샤리아(이슬람 율법)와 차이가 있다면 무슬림은 반드시 샤리아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저 먹고살기 위해서 혹은 돈 벌기 위해서 오는 사람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또는 대다수가 그런 목적으로 온다 할지라도 그들이 무슬림이라면 그들은 이슬람의 율법인 샤리아를 외면할 수가 없다. 그들은 테러범들과 같은 경전을 가지고 같은 신앙고백을 하며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행동모델을 따라야 한다.

얼마나 철저히 헌신된 무슬림 포교요원이었으면 이슬람국가에서 국가 장학금으로 유학을 보냈을까를 생각해 봐야한다. 그들은 이슬람 외에는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으며 어디를 가든지 자신들의 율법인 샤리아의 범주를 이탈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의 시중을 들기 위해서 할랄 식당을 만들어 주고 이슬람 기도처를 만들어 준다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 인도주의적인 측면에서 보면 당연히 해 줘야할 가진 자들의 의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슬림들이 그 기도처에서 무슨 기도를 할까를 생각해봐야 한다. 하루에 다섯 번씩 하는 그들의 기도 내용은 꾸란 1장(알 파티하)을 외우면서 율동하듯 동작을 취하는 것이다. 이는 7절밖에 안 되는 짧은 내용이며 이것은 영원히 바뀌지 않으며 매일 5번 기도할 때 17번씩 반복하여 암송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7절 전체의 핵심은 6절과 7절이다. “알라의 진노를 받은 유대인들과 방황하는 기독교인들이 가지 않는 옳은 길로 우리를 인도하소서.” 즉 기독교인들과 유대교인들을 알라의 적으로 보고 그들과 담 쌓는 기도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 다섯 번씩 메카를 향해서 엎드려 기도하는 신앙이 돈독한 무슬림일수록 비무슬림들과 친하게 지낼 수가 없는 것이다.

꾸란은 기독교, 유대교인들을 절대로 친구로 삼지 말라고 한다.(꾸란5:51) 이슬람을 믿지 않는 자들은 모든 피조물 중 가장 사악한 짐승들이라고 한다.(꾸란8:55) 비무슬림들을 친구로 삼는 것은 그대가 알라의 적이라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한다.(꾸란4:144)

그들을 모셔다가 개종시키면 될 것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너희를 이슬람에서 떠나 자신들과 같이 불신자가 되게 하려는 자들이 있다. 그들이 알라의 길을 거절하고 돌아선다면 어디서 발견하든지 그들을 살해하라.”(꾸란4:89)는 구절이 꾸란에 있다는 것을 알면 철저한 준비 없이 섣불리 달려들 일은 아니다. 모든 무슬림들이 이 구절을 실천하지는 않지만 헌신된 무슬림들은 이를 실천하는 것을 자신이 신실한 무슬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행위로 생각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전체 17~8억 무슬림 중에 15~25% 정도 된다고 본다.

이슬람 국가에서 정부장학 유학생으로 선발될 정도면 이 15~25%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들을 모셔다가 극진히 대접하면서 교육시킨다는 것은 후손들의 행복을 담보로 국가의 장래에 재앙을 심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일부러 모셔오지 않아도 유학생들 중에 무슬림들이 섞여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을 지라도, 무슬림들만을 모셔오려고 정책을 세우고 이슬람국가를 전전하며 유학생들을 보내달라고 사정하는 것은, 대책 없이 무슬림들을 끌어들였다가 매일 테러로 고통당하는 유럽을 볼 때 후손들의 원망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행위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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