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가 괜찮다면 죄가 안되는 시대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서 이런 장면이 나온다. 그리스도인이 인간의 마음을 상징하는 큰방에 들어간다. 그 방은 죄를 나타내는 먼지로 덮여 있는데, 그가 법을 상징하는 큰 빗자루로 먼지를 쓸어내려고 빗질을 한다. 그런데 먼지를 쓸어내기는커녕 오히려 더 먼지를 일으킨다. 이것이 우리가 법에 따라 살려고 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죄를 쓸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를 더 자극시키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죄성”은 법 앞에서는 더 야성을 드러낸다. 인간 스스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평행선 상에 있는 것이 죄성이다.
칼 메닝거는 그의 저서 ‘죄로 인한 결과’에서 20세기 중반부터 사람들 사이에 죄의 개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하면서 개탄하였다. 그는 “나도 괜찮고, 너도 괜찮다”라는 식의 사고 방식이 팽배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민주주의는 많은 사람들의 지지만 받으면 <절대적인 기준>도 바뀌어지며, <정의>의 개념도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게 되었다. 나라의 기조인 헌법만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괜찮으니까 너도 괜찮아” 라는 방식이 새로운 진리, 새로운 기준으로 바뀌는 것이다.
하나님은 동물에게는 <본능> 이라는 것으로, 사람에게는 <이성과 양심> 이라는 것으로 섭리하시고 이끌어 오셨다. 그런데 인간의 이성과 양심이 마비되면 하나님의 섭리를 외면 거부하게 된다. 그 마비를 일으키는 마취제 중 가장 강력한 수단이 민주주의라고 본다. 왜냐하면 절대 다수가 지지하면 선악의 개념조차도 일시에 달라지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수가 괜찮다면 죄가 아닌 시대에 살고 있다. 집단적인 죄성이 양심을 마취시킨 결과이며, 제 2의 바벨탑 효과이다.
대 홍수 때에는 노아 가족만 의인이었고, 소돔과 고모라의 사태 때에도 롯의 가족만 살았다. 다수가 진리 밖에서 "괜찮아--" 할 이 때가 바로 인류 멸망의 때이며, 예수님의 재림의 때일 것이다. 때를 읽을 수 있는 영적 지혜를 간구해야 할 위급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