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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다면 영을 분별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진리의 영을 분별하지 못하면 아무리 열심히 일을 했어도 사단을 위한 열심이 될 수가 있다. 자기 생각에는 열심히 했는데 하나님은 바로 그 열심 때문에 노하시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사무엘하 6장에 다윗이 임금이 되어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길 때 웃사는 법궤의 운반 책임자였다. 소들이 뛰놀아 법궤가 흔들리자 웃사는 자신의 책임을 충실히 감당하기 위해서 손으로 법궤를 붙잡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웃사를 그 자리에서 죽게 하셨다. 상식적으로 보면 상을 주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성물은 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어 운반하게 되어 있는데 소들이 끄는 수레로 운반한 것부터 잘못되었다. 그리고 만지면 죽는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민수기 4장15절) 그래도 어떻게 법궤가 수레 위에서 상하도록 내버려 둘 수가 있나? 하고 웃사는 진리의 말씀을 떠나서 자신의 열심으로 법궤를 붙들었다가 죽임을 당했다. 진리의 분별력이 없으면 이렇게 열심히 일한 것 때문에 큰 벌을 받는 수가 있다.

아브라함에게 백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시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때로는 우리의 상식과 이성으로 도저히 납득이 안 가는 명령을 내리실 때가 있으며,

사단도 때로는 광명의 천사처럼 그럴듯한 명령을 내려 성도들을 넘어지게 하는 경우를 성경에서 종종 보게 된다.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실 때 베드로는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This shall never happen to you!)"라고 말했다. 우리는 여기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영어 문법상 이 문장은 의지미래형 조동사를 쓰고 있으므로 ”당신에게 이런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도록 내가 막겠다“고 번역해야한다. 예수께서 인간적으로 생각하셨다면 ”나를 이토록 생각해 주니 3년 동안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친 보람이 있구나“라고 말씀하셔야 맞을 텐데 오히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마16:23)라고 심하게 꾸짖으셨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진리의 영을 분별하는 능력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십자가의 죽음은 인류를 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유일한 방법인데 이를 가로막는 것은 사랑이라는 가면을 쓰고 베드로를 유혹하여 인류 구원의 길을 차단하고자 하는 사단의 작전이었다.

그렇다면 진리의 영을 분별하는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

첫째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즉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는 지의 여부를 보면 된다. 이를 인정하면 성령님이시고 부인하는 것은 악한 영이다. (고전12:3)

둘째는 예수님계서 육체로 오신 것 즉 십자가의 피흘림과 죽으심을 시인하느냐의 여부를 보면 된다. 부인하는 것은 악한 영이다.(요일4:1)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부인하여 인류 구원을 방해하기 위한 교묘한 사단의 전술인 것이다.

셋째는 서로 사랑하도록 가르치는지의 여부를 보는 것이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7), 성령은 불신자뿐만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누가복음 6장27절)

이 외에도 많이 있겠지만 이 세 가지 정도만 확인하면 진리의 영인지 악한 영인지 확실하게 분별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가지 기준에 의해서 이슬람의 꾸란은 성령의 계시인지 다른 영의 계시인지 쉽게 구별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첫째 꾸란을 계시한 영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반면에 무함마드를 최후 최대의 예언자라고 부르면서 예수님보다 위대한 선지라라고 부른다.

그들은 마리얌의 아들 예수를 주로 숭배하고 있으나 알라 외에는 경배하지 말라. 알라 외에는 신이 없노라.(꾸란9장30-31절)

둘째로 꾸란을 계시한 영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을 부인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길 우리가 알라의 사도 마리얌의 아들 예수를 죽였노라 하였으니 실로 그들은 예수를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박지 못하였으나 다만 예수가 못 박힌 것처럼 보이도록 한 것이며 이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분명 그것에 대한 의혹의 상태에 있으며 그들은 그것을 분명히 알지 못하고 다만 추측을 따를 뿐이며 ... (꾸란4장157절)

셋째로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성령의 계시와 는 달리 꾸란을 계시한 영은 이슬람을 믿지 않으면 죽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슬람을 믿지 않는 자들은 발견되는 대로 죽이라(꾸란9장5절), 만일 그들이 너희로부터 물러서지 아니하고 또 평화를 제안하지 아니할 때는 너희가 어디서 그들을 발견하던 그들을 포획하여 살해하라. 이는 알라께서 너희를 위해 그 권한을 부여하였노라(꾸란 4장 91절) 고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꾸란에는 유대교인과 기독교인을 무지한 백성(불신자)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믿는자(무슬림)들아 , 유대교도나 그리스도교를 벗으로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서로서로가 벗이다. 너희들 속에 그들을 벗으로 하는 자가 있으면 이 자도 그들과 한 통속이다. 알라께서는 무지막지한 백성을 인도하시지는 않으신다.(꾸란 5장51절: 김용선 번역본)

이 정도면 꾸란을 계시한 영이 어떤 영인지 혹은 알라(Allah)가 기독교의 하나님과 같은 신인지 다른 신인지는 충분히 명백하게 분별 할 수 있을 것이다.

참되고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있는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도 우리 하나님을 이슬람의 알라와 같은 신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속히 잠에서 깨어나 이슬람의 영의 정체를 바로 분별하고 그 영에 사로잡힌 불쌍한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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