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福 있는 사람들인가?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복음을 전했던 갈라디아 교회를 향하여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고 책망한 바 있다. 이상한 사람들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갈라디아의 교회들은 참으로 이상한 존재였다. 어쩌면 그렇게 그리스도의 은혜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다른 복음으로 달려갈 수 있었는지. 어쩌면 그렇게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게 되었는지. 어쩌면 그렇게 은혜 아래 머물지 못하고 율법으로 돌아가게 되었는지.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 복 있는 사람은 율법을 지키려고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 땅위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물질과 시간과 정열을 투자해 두는 사람도 아니다.
다만 여호와의 율법이 즐거운 사람이다. 들여다보고만 있어도 즐겁고 무슨 뜻인지 깨달아지면 저 하늘에 천국이 없어도 좋은 사람이다.
신앙생활이란 말씀이 즐거움이 되는 생활을 말한다. 그 즐거움 때문에 세상에서의 어려움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생사의 여러 고통들을 참고 사는 것이 아니고 말씀이 주는 즐거움 때문에 고통이 고통으로 여겨지지 않는 삶이다. 신앙생활을, 죽음 이후를 대비한 투자로 생각하는 것은 그러므로 오해이다. 신앙생활은 오늘의 기쁨이요, 오늘의 충만이며, 오늘의 행복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멀리 있는 것도 아니며 가져다 행해야 할 어떤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 입에 있어야 하고 우리 마음에 있어야 한다. 우리 마음에 즐거움이 되어야 할 말씀이 우리를 억누르는 짐이 되는 사람은 스스로의 고난 중에서 망할 것이다.
말씀만이 우리 발에 등이고 우리 길에 빛이다. 충성도 아니고 헌신도 아니며 노력도 봉사도 아니다. 오늘 이 땅의 기독교는 돌이켜야 한다. 세상을 향해 회개하라고 외칠 일이 아니고 스스로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말씀 안에서 살며 자라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반드시 망할 것이다. 비록 스스로 자긍하여 무슨 소리 하느냐, 우리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곤고와 가난과 빈약 투성이임을 모르고 있다.
스스로 돌이켜, 우리가 과연 성경이 말하는 화 있을진저의 대상인지 복 있는 사람의 대상인지를 생각하자. 성경의 말씀과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래도 우리는 희망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철저히 절망하고 지금 완전히 무너지자. 지금 스스로 무너지면 긍휼을 입겠지만,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뜨리울 때까지 기다린다면 그 땐 절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