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2일 여성목회자 세미나. 23-24일 영적각성 집회 강사ㅣ 시온세계선교교회. 시온은혜기도원 원장 신현옥 목사 (1)
1. 취재의 배경과 당위성 : 사실 넘어의 통찰...진실
정보의 홍수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이 범하기 쉬운 치명적인 실수 가운데 하나는 정답을 알아가는 과정의 중요함을 무시한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정보를 접할 때 읽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저 바라보는 것에 만족하고 더 나아가 그것이 정답이라고 단정을 내린다는 점이다. 이런 과정에서 행여 잘못 전달된 정보는 특정인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본 기독저널은 최근 한국 경기도 송탄 소재 시온세계선교교회를 담임하며 시온은혜기도원 원장 신현옥 목사를 만났다.
어찌된 영문인지 신현옥 목사를 만나기도 전에 그 만남을 지극히 염려(?)하는 말하기 좋아하는 인사들이 먼저 신목사와의 만남을 방해하는 일들이 발생하기도 하는 등 신 목사와의 만남은 처음부터 닦여져 있는 길을 통한 만남이 아니라 새 길을 뚫고 만들어 가는 길목에서의 만남이었다. 본디 ‘길 찾기’를 좋아해 PATH FINDER라는 별명을 자랑스레 여기던 기자는 뭔가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신목사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2017년 11월 13일 신목사는 처음 만난 자리에서 문득 “자신에 대해 아는 게 있느냐?”고 물었다. 그렇게 시작한 2시간여 대화를 통해 내린 결론은 정형화 되어 있는 세상에서 無定型을 주장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며 그 무정형 앞에 우뚝 버티고 선 교계는 신현옥이라는 한 여성 목회자에게 ‘이단과 사기꾼’라는 주홍글씨를 큼지막하게 박아 넣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일순간 단 한번에 박아버린 주홍글씨로 인해 신현옥 목사는 본인이 생각하고 꿈꾸는 진실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사실로 끊임없이 측량 당하면서 지금까지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다.
자유론으로 유명한 J.S.밀은 일반화된 진리는 이미 그 속에 오류를 내포한다는 말을 한 바 있다. 아무리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인정하는 사실(진리)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자기 속에서 소화된 자기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이미 진리로서의 가치성을 상실한다는 점을 간파하여 한 말로 볼 수가 있겠다. 이 점은 바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제1의 가치라고 할 수 있으며 철학이나 신앙의 영역에 있어서는 정말 아무리 강조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문제이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의 모습을 보노라면 자기 내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여 확인한 후 이르러야 할 진실에 대해 전혀 백안시 해 버리는 어리석음을 낳고 있다.
이것이 본 기독저널이 신현옥 목사를 뉴욕에 당당히 소개하는 배경이 된 것이다.
덧붙여 말하면 동거하지 않는 남편에 대한 앎이란 피상적이며 건조하기 이를 데 없으며 이러한 것은 지식이 아니다. 범부(凡夫)의 삶이 지식이다. 낫 놓고 기역자를 모르더라도 낫을 가지고 살면 그는 낫을 아는 사람이다. 오늘날 신학과 신앙의 맹점이 이것이다. 기역자를 알자는 것인지 낫을 알자는 것인지 ─ 이것이 문제이다. 낫을 가지고 기역자나 가르칠 바에야 그것도 명조체냐 고딕체냐 입에 침 튀어가며 떠들 바에야 오히려 낫을 없애는 것이 더 인간적이지 않는가 말이다.
2. 신현옥 목사를 둘러싼 객관적 사실 : 이단 시비와 사기죄 판결
*2011년 교인 K씨로부터 병치유 목적으로 받은 헌금에 대한 사회적 책임 차원으로 인해
대법원으로 부터 사기죄 판결, 해당 헌금전액과 법정이자 포함한 전액 돌려주고 마무리.
*2003년 1월 이단 논쟁에 휘말림...기자회견 통해 본인의 부주의 인정하고 이후 헌신적 목회.
그저 얼굴만 보고도, 한 두어 마디 말만 나누어 보고도 그 보이지 않는 내면을 알 수 있는 세상은 영원한 꿈인가.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는 교리적, 세상적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 신현옥 목사를 교계는 가차없이 이단시하고 일의 전말은 뒤로하고 결론적인 현상으로 상대를 진단한다.
19세 어린나이에 도미하여 청년기를 보내고 미국적 사고에 익숙해 있는 신현옥 목사가 20년의 세월을 넘어 고국에 도착한 시점은 IMF로 모든 것이 부족했고 심적으로도 상대적 빈곤과 상실감으로 인한 환경적 요인이 어느 때 보다도 피폐해 총체적으로 속이 비어있는 상태에서 뭐라도 있으면 허위의 모습에 온갖 번지르르한 모습을 덧칠하려고 하던 때였다.
교계 역시 허위의 모습을 서로 인정하고 재단하고 정죄하며, 부러워하는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그 시점에 한국교계에 발붙이고자하는 한 여성 목회자의 필사적인 노력은 오히려 표적이 되어 되돌아왔다.
더욱이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다툼이 극심한 몇몇‘이단 감별사’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형성한 그들만의 세상은 신현옥 목사를 가만 둘 리가 만무했다.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교리)을 가지고 너희로 利를 삼는(벧후2:3) 사람들의 분리에 제대로 걸려들어 신 목사는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다.
3. 발행인이 만난 사람, 목사 신현옥 : 예수의 겸손을 가진 목사
성경의 모든 역사는 자기식으로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들과 하나님 식으로 하나님을 존경하고 경배한 사람들의 삶의 기록이다. 따라서 자기식으로 얼마나 많이 믿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믿음이 우리에게 있느냐가 문제의 핵심이다(마5:20).
기자가 만난 신현옥 목사는 우선 말이 거칠(?)었다. 작금의 한국사회와 교계에 대한 질문에 대해 사역이라는 대명제 앞에서 신목사의 입을 통해 나오는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누구를 의식하지도 않았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오직 신목사의의 관심은 소외된 계층을 향한 안타까움만이 절절히 배어나왔다.
말 그대로 교회와 신앙인들이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고 역할을 분담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사회적 선교 마인드로 무장된 신목사는 작은자들의 代母로써 저들의 입장을 대변하며 자신의 헌신이 부족하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교회와 본인이 두 차례 경험한 극도의 어려운 환경 중에도 중단됨이 없이 지난 10여년 이상을 지속해오고 있는 노숙인과 독거노인 돌봄 사역을 비롯해 신학생과 목회자, 자녀까지 신목사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어떻게 이 일을 감당하느냐”고 물으니 두툼한 겉옷을 걸치며 “따라나서라”고 한다.
본인 자신도 어려움 중에 처할 때 한끼 식사와 헌금이 없어 눈치를 봤던 시절을 회상하며 신 목사는 많은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기 위해 8천여 평의 농사를 직접 짓는다. 그 농산물로 반찬을 만들어 다수의 반찬 가게를 운영한단다.
자신도 틈나는 대로 손수 짠지, 파김치와 된장, 간장 등 식재료를 직접 담는다며 갈라진 손을 내보인다. 교회 뒤편으로 가니 100여개의 장독에 들어있는 보물들과 50여 평의 냉동, 냉장창고 시설이 즐비하다. 어는 것 하나라도 쉬워 보이거나 만만해 보이는 것이 없다.
다소 거친 언사가 세파에 치인 자신의 방어를 위함이 아니라 도움과 섬김이 필요한 작은 자들을 위함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입술로만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닌 신앙과 삶이 하나 된, 그래서 기자는 신 목사를 예수의 겸손을 가진 자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인간의 심성적 기질적 겸손을 통하여 실체적 겸손에 이른다는 말도 안되는 언어도단을 깨뜨리고 싶던 차에 예수의 겸손, 즉 하나님께 대한 겸손의 현장을 목격한 기자는 급속도로 마음을 열고 대화를 이어갔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