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완장은?
언제가 보았던 드라마였던가? 아무 능력이 없던 시골 사람이 팔뚝에 완장을 차는 순간 동네사람들은 그 사람을 피하게 된다. 완장을 찬 사람은 자기가 무서워하는 줄 알고 더 미친 듯이 날뛰었던, 정작 동네사람들은 하는 짓이 우스워서 피한 것임을 몰랐던 것이다.
완장의 위력, 백과사전에 나온 뜻으로는 신분이나 지위따위를 나타내기 위하여 팔에 두르는 표장이라고 나와있다. 전혀 능력없는 사람도 어떤 완장을 차느냐에 따라 사람이 바뀌어진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내의 상황은 어떠한가. 많은 직분들이 있다. 종종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교회에서는 권사가 높아요? 장로가 높아요라는 질문을 받게된다. 언제부터일까? 직분이 위치를 이야기하게 되고 직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까지 휘두르는 자리가 되었는지.
80년대 현대문학에 나왔던 소설“완장”을 떠올려봤다. 시골농부가 땅투기로 돈을 벌면서 운수회사를 설립하고 사장이 되어 동네건달에게 자기일부사업을 맡기면서 생긴 이야기. 밥만 축내고 있던 건달에게 관리를 맡긴다고 하자 몇푼되지 않는 돈이라며 거절하니 완장을 채워주겠다고 하자 수락하게되고 결국 감시원 완장을 차고 권력이랍시고 양어장에서의 행패가 심했다. 결국 자신에게 권력을 부여한 최사장의 일행까지 자기의 직권을 이용한다. 권력에 도취하여 자신에게 권력을 준 사람에게 까지도 맞서는 건달. 결국 쫓겨나게 되지만 팔의 완장은 결코 내려놓지 않고 경찰과의 충돌까지 생겼다. 다행이 그 과정에서 ‘완장의 한계’를 깨닫고 완장에 관심없던 술집작부와 저수지에 완장을 버리고 떠난다는 이야기.
에베소서 4장 11~12절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했다.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봉사의 일을 하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라고 주신 직분이 어느 틈엔가 성도위에 군림하는 권력이 되어가고, 계급이라는 층을 만들어 끼리끼리 라는 단어가 사용되어져 간다. 분명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내가 했다”라고 말하고 직분조차도 “내가 누구를 세웠는데” 라는 표현이 민망하게 사용되고 있다. 꼭 세워야 할 자리에 있다면 그 또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공적위임인 것일터.
집사, 안수집사, 권사 ,권찰 , 장로 등 다른 곳에는 없는 직분호칭조차 만들어 가며 불러줘야하는 이 현실이 때론 안타깝다. 더구나 직분을 이용해 ‘감히’라는 단어를 쓰면서 서로 질책하는 것이 맞는건가. 작년 한 교단의 교회에서는 60여 년 된 교회의 가족중심의 장로와 권사들이 영혼구원의 열정으로 전도로 부흥시킨 목회자 부부를 목회자 자녀의 연약함을 앞세워 공격을 하고 결국 교회를 그만두게 하는 일련의 사건이 있었다.
오늘날 교회의 직분들, 과연 섬김의 순서인가 군림의 순서인가. 하나님은 분명 우리에게 몸 된 교회를 세우라 하셨다. 내가 찬 완장이 사랑의 표현이 될 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