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방 기도가 없는 하나님의 놈팽이 자녀 "
집을 두고도 밖으로 떠도는 때가 아마 20대 초반이 아닌가 싶다. 이 때는 자기 집을 마치 여관처럼 여기고 부모는 자녀들의 얼굴조차 보기 힘든 경우도 다반사이다. 이렇게 자녀가 부모를 등한시하는 상황을 하나님과 인간 관계에서 표현한다면, <골방 기도가 없는 놈팽이 성도> 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자녀가 친구들과 떼지어 다니면서 먼 발치에서 부모에게 겨우 손이나 흔드는 자야말로 교회 문턱만 밟으며, 살아 계신 주님과 교제가 없는 이름만 교인인 것이다. 연애하는 남녀가 늘 같이 만나기를 기뻐하는 장소와 시간이 있는 것처럼 예수님도 예루살렘에 가실 땐 기도하는 곳이 감람산 이었다. 이처럼 하나님과 밀담을 나눌 수 있는 안락한 아지트가 있어야 한다. 그냥 수 많은 무리에 섞여서 하나님을 지나가는 아저씨로 만들게 되면, 주님은 천국 문 앞에서, 경건의 삶이 없으므로 기름이 없는 등잔을 가진 자로 분류하여 숫제 모른다고 할 것이다.
사람마다 그에게 대표가 되는 이미지가 있다. 사무엘의 그림은 어릴 적부터 은퇴하여 노인이 되기까지 온통 <기도하는 자> 이니, 이는 그의 어머니 한나가 기도로 받은 아들다운 이미지이다.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삼상1:17-18) 애써 기도하여 은혜를 가득 담아 근심이 사라진 한나의 모습을 보라. 그의 아들 사무엘은 은퇴할 무렵, 백성들 앞에서 한 그의 최후의 다짐을 들어 보자.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 (삼상12:23) <기도하지 않는 것이 죄> 인 이유는 하나님의 대리자 부모에게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20대 놈팽이 아들에게서 찾으면 이해가 될 것이다.
기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움직이게 한 사례는 수 없이 많다. 모세가 율법 돌판을 받아 산 아래에 내려왔을 때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경배하고 있었으며, 이윽고 하나님은 백성 모두를 멸절하겠다고 하시자,모세는 목숨을 내어 놓고 기도하여 백성 모두를 구하였다. "모세가 ----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출32:31-32) 지금 우리가 알고 또 보는 이스라엘은 모세가 기도로 다시 환수 받은 백성들과 나라이다. 이렇듯 통회를 동반한 기도는 엄청난 능력을 부여 받게 되는 것이다.
미국 어느 가난한 시골의 <콜 게이트> 라는 청년이 비누 공장을 꿈꾸며 뉴욕 맨하탄이라는 섬으로 가는 배 안에서 어떤 노인의 충고를 듣는다. 줄곧 기도로 운영하며 반드시 십일조를 바치라는 이 권고를 꾸준히 실천하여 재벌이 된 이야기이다. 그는 찾을 수 없는 그 노인 덕에 큰 축복을 받았다고 회고하였다.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침노하여 천국문을 여는 열쇠이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이 열쇠는 누구나 어디에서든지 사용할 수 있으나 이 얼마나 공평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은혜인가. 아직 놈팽이 성도 노릇에서 벗지 못한 자들이여, 이 놀라운 골방 기도로 하나님과 열애하여 보라. 깊은 회개만 앞선다면, 순식간에 빨려 들어 갈 만큼 주님의 강한 손이 잡아 이끌 것이며 또 응답을 반드시 하시겠지만, 그 사실 보다 더 짜릿한 것은 주님과의 대화, 의논 그 자체가 평안을 동반하는 기쁨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손이 자신을 꽉 잡고 있는 힘이 감지될 그 때까지 애를 써 기도해야 한다. 지금의 나로서는 이 방법 외의 <놈팽이 성도 탈출법> 은 없다, 도무지 없다